| | | |  이달의 <퍼머가 컬처여>    [모두의 제4회 퍼머컬처네트워크대회 다시 보기]# 대회의 역사를 들려드립니다 by 지원
     # 스페셜 게스트 인터뷰 : 야마가타 트윅스터     # 스폐셜 게스트 대회 참여 후기 : 장이정규
     # 자라와 하루가 전하는 기획단 참여 후기# 작은 모임 이야기 by 토마저씨 그리고 꽃마리
     # 처음 만난 퍼머컬처네트워크대회 by 박소윤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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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 9월 12~14일 영남 알프스에서 제4회 퍼머컬처네트워크대회가 치러졌습니다. 30기 퍼머컬처학교 발표회&수료식을 시작으로 2박3일이라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만큼 알찬 시간이었죠. 함께 대회를 일군 다섯 명의 퍼머컬처리스트와 두 명의 스페셜게스트의 이야기로 함께 대회 다시 보기를 시작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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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퍼머컬처네트워크대회의 역사를 들려드립니다! by 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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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1회(2022년) …… 퍼머컬처 출범식 퍼머컬처리스트가 모이는 첫 대회였어요. 그때는 소란이 10년 넘게 전국을 돌며 교육을 해 와 전국에 흩어져 있던 퍼머컬처 디자인학교(PDC) 수료자들인 퍼머컬처 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이었죠. 사실 1회 때는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논의의 자리였기도 했고, 공동체의 씨앗이 되기도 했어요. 실제 1회 대회 때, 각자 제주에서 날아온 퍼머컬처 디자이너들이 강릉에서 만나 이루어진 게 지금 제주 생태거점으로 활동하는 설문대발어름팀이에요.    제2회(2023년) …… 퍼머컬처는 농사를 가장한 혁명이다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20분 발제로 나누며 관심 있는 영역의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였어요. 바로 지금의 풀개미가 이루어진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2회까지는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았어요. 참가비보다 항상 넘어가는 지출 비용이 부담이었죠. 대회가 지금까지 계속되는 데 소란의 애정과 공이 참 컸어요.   제3회(2024년) …… 퍼머컬처는 연결을 디자인한다! 2회 때의 컨버전스보다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각 대표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어요. 교육, 씨앗, 손기술(적정기술), 죽음(영혼을 돌보라) 등 다양한 주제가 있었는데, 특히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이 되어 이번 모두의 통장에서 퍼머컬처 숲밭장까지 연결되었습니다. 더불어 처음으로 CMS 후원 회비를 받기 시작해 통장 잔고를 보며 떨리는 마음으로 대회를 진행했습니다. 
 4회(2025년)…… 변화는 가장자리로부터 시작된다 이번 대회 주제는 작년 퍼머컬처 세계대회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때 난민과 취약계층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고, 퍼머컬처의 원리에서 말하는 가장자리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가장자리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퍼머컬처 텃밭과 커뮤니티들이 우리 안에 존재했습니다. 올해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 이번 대회처럼 야외생활(with 야생식탁)을 하는 행사를 우리가 진행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 것, 그리고 대회 전에 진행한 사전 워크숍 건축학교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더불어 1년 사이에 회원이 100명이나 늘었다는 것도 놀랍죠. 회원 300명을 목표로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다가왔어요. 목표를 이룰 수 있게 주변에 네트워크를 많이 소개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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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빼앗긴 땅을 되찾고 회복시키는 현대판 인디언들의 모임" 야마가타 트윅스터 _ 민중 엔터테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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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로 말하자면 퍼머컬처네트워크 대회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릉 첫 대회부터 지난 4회 대회까지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올라 “퍼머컬처리스트들이여~ 지구를 구하라!”며 외치던 이분. 그 사이 1미터를 훌쩍 넘어서던 점프 높이는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그는 우리가 환호해마지 않는 퍼머컬처계의 아이돌입니다. 무대를 내려온 야마가타 트윅스터를 만나러 만리동 고개를 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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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책방지기이고, 민중 엔터테이너이고, 자립 음악가입니다. 주로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또 여기 아현동에서 작은 책방(만유인력)을 운영하고 있는 한받이라고 합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일까요? 20년 전에 지은 이름인데, 좀 장난스럽게 만들었어요. 보통 우리가 화났을 때 ‘야마 돈다’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 어감이 재밌어서 붙였죠. 그 전에는 ‘아마추어 증폭기’라는 이름으로 통기타를 치면서 잔잔한 포크가수로 활동했죠. 그러다 디제잉 제안을 받고 순간적으로 떠올린 이름이 야마가타 트윅스터예요.  
 퍼머컬처네트워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4대강 사업에 맞선 양평 두물머리 현장에서 만났던 분이 연락을 해오셨어요. 제가 그때 땅을 지키는 노래와 행진으로 많은 연대를 했거든요. 그렇게 1회 네트워크대회를 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뭔가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공동체라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뭔가 잊고 있었던 그런 감각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퍼머컬처리스트과의 첫만남은 어땠나요? 이런 표현이 좀 웃기지만 ‘현대 인디언’ 같달까요. 원래 살던 땅에서 쫒겨난 인디언들이 다시 그 땅을 되찾고 회복해가며 1년에 한 번씩 모여서 서로에게 힘을 주고받는 듯한 모습이었죠. 아주 강렬했던 것 같아요. 마치 장작처럼 불이 확 타오르는 어떤 시공간처럼. 지금은 강도는 조금 줄었지만 퍼머컬처만의 스타일은 여전하죠. 작은 웅덩이가 있는 무대가 흔치는 않잖아요. 
 네트워크대회를 위해 매년 곡을 써오신다던데? 맞아요. 그게 제 스타일이에요. 새로운 공간, 새로운 지역에 가면 항상 그곳을 생각하며 신곡을 만들어가죠. 저만의 철칙 같은 거죠. 그러다보니 모든 무대가 신곡이에요. 이렇게 만들어진 곡이 몇 백곡인데 한 번 부르고 그냥 사라진 노래도 있죠. 그런데 이번 대회에 1회 때 만들었던 노래를 가져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이렇게 같은 곡이 수년째 이어지는 경우는 잘 없죠.  
 남다른 무대 매너도 화제입니다.  사실 전 평상시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정말 조용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무대에 올라 춤추기 시작하면 다들 놀라워하죠. 무대에서 춤추며 진정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한 번은 바지를 여러 겹 껴입고 곡이 달라질 때마다 바지를 하나씩 벗고 춤추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무대에서 쫒겨난 적도 있었죠. 예전에는 무대에서 엄청나게 방방 뛰고 물구나무를 서서 노래하는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했는데, 2년 전 빗길 자전거 사고를 겪은 후로 퍼포먼스도 덜 과격해졌죠.  
 스스로를 민중 엔터테이너라고 부르시는데… 민중 엔터테이너는 자본과 차별, 억압에 저항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엔터테이너를 뜻해요. 15년 전쯤 홍대 앞 두리반식당 강제철거 투쟁에 연대하면서 시작되었죠. 저를 표현하는 '자립 음악인'도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우는 음악’을 한다는 의미예요. 그렇게 연대함으로써 스스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능한 소수의 투쟁, 연대 혹은 공동체를 지켜내려는 현장을 우선적으로 찾아가려 합니다.  
 네크워크에 한 말씀 남긴다면? 문화예술 단체나 사람들과의 연대로 조금씩 퍼머컬처의 장이 확장되길 바랍니다. 저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좀 더 적극적인 프로젝트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 / 한받 장래희망이 영화감독과 시인인 고등학생 시절, 그에 맞는 이름으로 ‘한받’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해 몇 편의 단편영화를 만든 끝에, 빠르게 포기하고 북유럽으로 가서 집시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잠시 들린 상해에서 기타를 사면서 그 소리에 마음의 위안을 받으며 돌아와 음악을 시작했다. 목사라는 뜬소문이 있지만 집사다. 현재 최대 관심사는 8년째 운영 중인 서점 <만유인력>의 활성화. 이곳을 지키기 위해 매일 새벽부터 오후 3시까지 식당에서 설거지 노동을 해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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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부족'이라는 동질감과 이해를 확인하는 자리…장이정규 _ 한국생태심리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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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박2일간 참여하신 네트워크대회에 대한 인상이 궁금합니다. '축제'의 장이자 서로의 생사와 안녕을 확인하는 장 같았어요. 일상의 공간에선 별난 일을 하는 별종 취급을 받을 지 모르지만, 여기에서 만큼은 우린 같은 이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사람들, 즉 '부족'이라는 동질감과 이해를 확인하는 느낌이랄까요. 그 자리에 함께 하는 자체가 제게 어떤 푸근함과 안도감을 주었고, 괜히 혼자 실실 웃게 되더라고요.
 
 퍼머컬처네트워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그냥 스며들 듯 시작됐어요. 정확히 시작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어요. 은평구에 살았던 터라 전환마을부엌에 관한 소식을 듣고는 있었죠. 이런 실험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존경심을 갖고요. 의료협동조합 살림병원에 들른 후엔 늘 자신에게 주는 선물처럼 밥풀꽃을 들르곤 했는데, 전환마을부엌의 소란이 거기 쥔장인 건 뒤늦게 알게 됐어요. 퍼머컬처라는 단어는 호주 유학 시절이던 1999년 경에 들었어요. 대안적인 생활방식으로 유명한 님빈을 국내 대안학교의 선구자와 같이 들를 일이 있었거든요. 그곳 어느 농장에서 퍼머컬쳐 디자인에 관해 소개 받으며 그 개념에 매료되었고, 퇴비를 만드는 방법도 안내 받았죠. 층층이 신문지를 깔아주면 공간이 생겨 벌레들이 죽지 않는다는 건 아직도 기억 나요.
 
 대회 동안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각 지역의 퍼머컬처리스트들이 돌아가며 자신에게 가장자리란 무엇인가를 나눴을 때요. 서로 사는 곳도, 처한 환경도 하는 일도 다 다른 그 다양한 색깔이 아름다웠어요. 하나 더 말하자면, 단연코 식사 시간이었어요. 맛있는 채식을 매 끼니 먹을 수 있어 넘 행복했어요. 20년 전 어느 생태공동체에서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는데, 늘 그리웠거든요.
 
 올해 네트워크대회 주제가 <가장자리>였는데요. 소장님께 ‘가장자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게 가장자리는 '가장 활발하게 생명력이 교차하고 창조적 변화가 일어나는 경계 영역', 즉 주류의 가치를 옹호하고 추종하는 중심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재밌는 실험들이 가능한 장소입니다. 생태계에서 숲과 초원,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가장자리가 가장 다양한 종이 서식하며 풍요로운 것처럼요.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가장자리는 어디일까요?하나는 '기후위기의 불안과 공동체의 돌봄/치유가 교차하는 경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몇 년 전에 청년 기후 활동가들의 멘토 역할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이후 3년인가 지나 이들 소식을 들었는데, 다들 번아웃으로 힘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죠.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적 슬픔(Eco-Grief)이나 기후 불안(Climate Anxiety)은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요. 하지만 그런 힘든 감정을 집단/공동체 안에서 건강하게 다뤄서 지치지 않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안나 메이시의 '재연결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는 외부의 활동에 주목하는 만큼이나 자신의 내면 생태계를 돌보는 게 필요함을 활동가들과 나누는 일이에요. 번아웃이 온 활동가들이 활동을 그만 두는 건 개인으로나 우리 사회를 위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니까요. 그래서 내면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생태심리학 입문 과정'을 시작했고 꿈작업과 같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도구를 나누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퍼머컬처리스트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장자리는 재밌는 실험이 가능한, 의미와 재미가 있는 장소인 동시에 척박하고 외로운 장소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네트워크대회와 같은 모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이 의미있는 퍼머컬처라는 실험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바깥의 땅뿐 아니라 내면의 생태계도 잘 돌보시길, 그리고 따로 또 같이 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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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올해도 사전에 기획단을 모집했습니다. 실제 행사는 대표 활동가들이 준비하지만, 인력적 시간적 한계가 있기에 더 많은 이들이 손길을 보탰죠. 이번 대회 기획단에 참여한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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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빈 곳을 채우는 아이디어와 돌봄의 장 자라 _ 1회부터 줄곧 기획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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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러 차례 네트워크대회 기획단으로 함께했는데… 어떤 변화가 있나요? 22년 강릉 네트워크 출범식 때부터 사전에 가서 도왔어요. 그때는 대표활동가도 없었죠. 늘 그렇듯 소란은 PDC수업을 하며 출범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강릉 대표활동가를 준비하던 솜씨와 두 분이서 거의 모든 출범식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함양, 양구대회는 창립총회에서 인준한 대표활동가들과 함께 준비하니 너무 좋았죠. 그런데 이번엔 새로운 지부 대표활동가들이 여섯 분이나 함께 준비하게 되어 네트워크가 더 성장했다 느껴져서 아주 의미있었어요. 새롭게 오신 분들이 일도 척척,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도 떠올려 주시고! 돌봄이 가득한 아주 신선한 기획단 활동이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누구랄 것 없이 빈곳을 채우는 뛰어난 감각들을 봤어요. 늘 준비기간이 충분하지도 않지만, 준비를 한다 해도 언제든 행사를 진행하다보면 빈 곳이 생기기 마련인데요. 한 사람에게 의지해서 무언가를 처리하다보면 그 한 분이 너무 힘들잖아요. ‘빈 곳을 인정하고 구멍을 메우며 가는 것이 지속가능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에도 사전에 어려운 에피소드들이 많았는데요. 숙소도, 무대 설치도, 부엌에 물을 대는 일도, 지역 셀러들과의 소통도, 렌탈텐트에 물까지 들어오는 기상조건도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번득이는 지혜로 조율하고, 빈 곳을 채우는 아이디어와 돌봄으로 대회를 마칠 수 있었어요. 힘들었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늘 대회 장소와 숙소가 한 곳에 모여 있었어요. 강릉도 함양도 양구도요. 이번엔 숙소도 세 곳이고 대회장소와 숙소와의 거리가 있어 발바닥에 불이 났어요. 밭 행사장에 오면 리조트에 뭘 두고 오는 것을 반복했죠. 그래도 야외행사장이며, 식당이며, 숙소며, 영남알프스의 대자연의 경치가 얼마나 좋은지 앉아서 경치를 보며 발에 불을 껐네요.   앞으로 기획단으로 활동하실 분들께 해 주고 싶은 이야기. 함께 네트워크대회를 만드는 자부심이 늘 있어요. 내년에 기획단으로 함께해요! 하루라도 좋구요. 아니면 대회기간 동안 울력으로 함께해도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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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퍼머컬처 관련 청소년 행사를 하게 된다면~ 하루 _ 기획단 최연소 멤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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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획단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지금 부산참빛학교라고 하는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저희 학교에서는 고3이 되면 인턴십을 가는데 어디로 갈지 고민 하던 중에 퍼머컬처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던 엄마가 이번 대회에 기획단으로 참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줬어요. 네트워크대회에서 어떤 것들을 하는지 궁금했고 '변화는 가장자리로부터' 라는 슬로건에 끌려서 기획단에 참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획단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마지막 날 밤, 공연을 보면서 다같이 춤추고 놀았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모두가 하나 되어서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정말 좋았고 너무 재밌었어요. 공연이 끝나고 기획단이 서로 수고했다고 안아줬는데 그때 이 굉장히 뿌듯하게 느껴졌고 기획단에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등학생으로서 기획단 참여가 특별히 의미 있었던 부분이 있다면요? 저는 학교 내에서 하는 행사 외에는 기획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기획단에서 혼자 청소년이었고 처음 만나는 분들이 많아서 어색했고 제가 도움이 되지 못할까 봐 걱정도 많이 했죠. 기획단에서 함께 준비하면서는 청소년들이 흔하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닌 것 같아 더 의미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청소년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만약 퍼머컬처 관련 청소년 행사를 하게 된다면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단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기획단으로 활동하실 분들께 해 주고 싶은 이야기. 행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겠지만, 기획단으로 참여해서 즐거움과 뿌듯함을 같이 느낄 수 있기에 그 기분을 느껴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음 네트워크대회도 잘 부탁한다고 전하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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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번 퍼머컬처네트워크대회에서도 다양한 모임들이 자리를 빛냈습니다! 특히 <건축학교 1기>는 대회장에 야외부엌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또한 퍼머컬처 행사에서 빠질 수 없는! 큰 불 게더링을 알린 풍물패의 놀이도 즐거웠습니다. 이 두 모임을 이끄셨던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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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건축학교 1기를 소개합니다]  작은 공간의 변화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던 순간 토마저씨 _ 건축학교 1기 리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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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건축학교 1기,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처음 대회 장소인 알프스 구르뫼를 답사했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었어요. “과연 여기서 네트워크 대회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맴돌았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겠더라고요. 다 같이 모여 알프스 구르뫼의 풀을 뜯어먹고, 노래하며 춤춘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잖아요. 아무것도 없었던 상황에서 퍼머컬처의 정신(?)을 발휘해 “없으면 만들자!” 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죠. 특히 잘 먹기 위해서는 부엌이 꼭 필요하고, 화장실과 샤워장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여졌어요. 그렇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다보니, 필요한 기술을 나눌 수 있는 건축학교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어요. 생태화장실은 PDC 30기가 수업 중에 만들고, 샤워장은 기획단에서 만들었습니다.    첫 작업이 야외부엌이었죠? 어떤 지점들에 신경을 쓰셨나요? 퍼머컬처가 지향하듯 새 것을 사지 않고 최대한 재활용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공간이고, 특히 알프스 구르뫼에는 어린 아이들도 많이 오니 ‘안전’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죠. 그래서 버려지는 팔레트를 활용하되, 안전이 필요한 부분은 튼튼한 기둥목과 브라켓을 사용해 보강했습니다. 제가 강릉에 살다 보니, 지붕이 바람에 날라갈까 봐 특히 신경이 쓰는데요. 그래서 바람이 부는 방향을 관찰해 부엌의 위치를 정하고, 기둥 아래에 땅을 파 추춧돌을 묻었습니다. 사실 이 추춧돌 작업이 제일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렸어요.   건축학교 참여자들과 함께 만들며 기억에 남는 순간들도 궁금해요.  이번 건축학교에서 인생 처음으로 드릴과 각도톱을 잡아봤다고 하신 분들이 몇 분 계셨어요. 처음에는 기계를 무서워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제법 능숙하게 다루시더군요.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무사히 마쳤어요.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면서도 모두 웃으며 서로를 응원하던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도면 초안을 꼼꼼히 검토해 준 ‘빼꼼숲밭’의 새공님과 농부, 밥통, 알프스, 주녁, 짱아, 하루살이까지 멋진 부엌을 위해 함께 고생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려요. 
 밭에 만들어진 야외부엌으로 나누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우리 퍼머컬처리스트는 연결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 야외부엌이 또 하나의 연결이 시작되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가꾼 땅에서 나온 먹거리와 사람을 연결하고, 그곳에 모인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무엇보다도 지역에 오래 뿌리내린 세대와 외부에서 새롭게 찾아온 세대를 이어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이번 대회애서 지역 부녀회 분들이 야외부엌에서 직접 만들어 주신 국수와 전을 함께 나눠 먹을 때, 작은 공간의 변화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순간이라고 느꼈어요. 혼자 울컥했답니다.   건축학교 1기의 다음 일정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엇을 먹고, 어떤 공간에서 살아갈 것인가로 이어지게 되죠. 앞으로의 건축학교는 단순히 목공이나 전기 같은 기술을 배우는 곳을 넘어, 내가 일구는 밭과 내가 살아갈 집을 직접 고민하고 만들어보는 학교로 발전하길 꿈꾸고 있습니다. 그 작은 시작으로 올여름, 가뭄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강릉의 밭들을 위해 소형 빗물저금통을 함께 만들어 볼 계획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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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풍물패로 함께합시다]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삶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풍물놀이 꽃마리 _ 풍물패 리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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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언제부터 네트워크대회 풍물패의 리더로 활동해왔나요? 작년 겨울 대만 세계퍼머컬쳐대회 때 강강수월래 이끄미로 처음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퍼머컬처대회에서 두 번째로 리더가 되어 공연을 이끌었어요.   대회에서 풍물패 공연의 역할은 뭘까요? 풍물놀이는 공동체 결속과 음악과 춤을 통해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삶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적 성격도 지니고 있죠.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즐기며 농사와 문화가 결합을 표현하는 문화입니다.    이번 공연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지나가던 마을주민분들도 차를 멈추고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 가락은 모르지만 한판 공연을 하니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다며 함께 즐기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공연오신 연주가(생황) 즉석 태평소 공연이 좋았습니다.   풍물패 공연 내용과 추후 하고픈 공연도 궁금합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문굿으로 대화를 알리는 길놀이로 시작해 강강수월래와 태평소 독주, 마무리로 이어졌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강강수월래를 다양한 마당을 함께 배우고 즐기고 싶습니다.    풍물패를 함께하고 싶어하는 분들께 남기고 싶은 메세지가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놀이판이에요. 함께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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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4회 퍼머컬처네트워크대회에 합류한 반가운 얼굴, 바로 PDC 퍼머컬처 디자인학교 30기입니다. 퍼머컬처네트워크대회를 처음 함께한 PDC 과정을 수료한 30기 퍼머컬처 디자이너 한 분을 모셔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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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작내가 진짜 원하는 배움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박소윤915 _ 영남알프스 PDC 30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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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PDC 이수 후 첫 대회에 참여했는데, 첫 느낌이 어땠나요? 퍼머컬처가 실제 사람들의 삶과 활동 속에서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PDC 교육 과정에서는 주로 강의실 안에서 같은 기수 사람들과만 어울렸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과연 이런 활동이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네트워크대회 현장에 가 보니, 비가 오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여서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누가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 텐트가 쳐지고, 부스가 열리고, 무대가 설치되고, 연못 주변은 더 아름답게 꾸며지며 활기가 넘쳤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나의 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자발성의 힘’에 대해 깊게 느꼈습니다. 이 경험 덕분에 잠깐이지만 “대학에 가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대학에서는 다들 수업 듣고 자격증 준비하고 비슷한 경로로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연결되어 있다는 게 신기했고, 제가 진짜 원하는 배움의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되었습니다. 
 
 대회에서 경험한 것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풀만찬회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원래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인원이 모여 각자 역할을 맡아 움직이면서도 혼란스럽지 않고 맛있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음식을 완성하는 과정이 놀라웠어요. 특히 다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진심으로 집중하고 즐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 역시 ‘아, 나도 이런 활동을 원하고 있었구나’라는 자각이 왔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공동체적이고 문화적인 활동으로서의 요리를 경험한 시간이었습니다. 
 
 PDC에서 배운 내용들과 이번 대회 경험이 연결된 부분이 있나요? 퍼머컬처는 문화를 만든다는 말을 듣고 주의 깊게 생각해 보고 싶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순히 땅을 가꾸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 사람들의 관계까지 설계한다는 점이 제가 배운 것과 직접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들 다양한 문화적인 경험과 기술들을 가지고 계신 점에서 다른 집단과는 다르게 생기 있는 삶을 사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회원들과 소통하면서 새롭게 경험한 것이 있나요? 혼자서는 막막했던 실천도 네트워크 안에서는 훨씬 가능성이 커진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짧은 대화 속에서도 "이런 접근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고, 함께 배우는 문화의 힘을 느꼈습니다. 또한 다양한 세대가 모여 서로를 돌보는 모습이 새로웠습니다. 보통은 비슷한 또래끼리만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연령대가 넓다 보니 오히려 프로젝트가 부드럽게 흘러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예전에 또래 집단에서 활동할 때는 바쁨과 오해로 와해되기도 했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세대의 다양성이 공동체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배웠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세대의 관점을 더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해 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요? 이번 경험을 계기로 단순히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작은 실천이라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 고향 청도에서 퍼머컬처 스터디 모임을 만들거나, 시민재단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지역에도 네트워크가 생기게 하고 싶습니다. 또 저와 같은 20대 초중반의 퍼머컬처리스트들 만들어 문화적으로 더욱 풍부한 체험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꽃꽂이, 그림, 코디얼 같은 활동 등 자연이 주는 자원을 통해 만드는 체험이 사람들에게 마음을 안정 시켜준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런 문화가 특히 청년층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청년들에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요. 퍼머컬처적인 문화가 더 널리 스며드는 것, 그것이 제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활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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