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차
2025년 을사년 봄날, 수락산 자락의 퍼머컬처 농부들이 한해 농사를 시작하고자 하늘과 땅의 허락을 구합니다.
수락산 아래서 농사를 시작한지 어느덧 6년째, 매년 세상의 변화를 기도하고 갈망하며 묵묵히 농사를 지어오고 있지만, 우리의 간절함은 하늘에도 땅에도 닿지 않았나봅니다. 생명이 샘솟아야 할 자리에 죽음의 냄새가 피어나고, 다름이 존중받아 마땅한 세상에 여전히 다양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수많은 목숨의 희생으로 이뤄낸 60년 민주주의는 그 명맥을 이어가지 못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작은 씨앗 하나, 풀 한 포기,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 퍼머컬처 농부들은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식물이 어우러지지 못한 밭은 오래 살아 남을 수 없음을, 우리 퍼머컬처 농부들은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아름다운 풍경을 이룰 수 있도록 농부로서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땅이시여, 하늘이시여, 바람이시여, 비시여, 멧돼지이시여, 고라니시여, 두더지시여, 사마귀시여, 비시여, 별이시여, 미생물이시여. 그 외 언급하지 못한 모든 생물, 무생물이시여. 무탈하게 농사 지을 수 있도록 모두 함께 굽이 살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25년 3월 23일
수락퍼머컬처공동체•인과의 숲•바람길 숲밭 농부들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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